대한장애인양궁협회

종목소개

활의 역사 

활과 화살의 기원은 그 유래가 유구하나, 그 기원이 언제부터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다만 원시인과 직립원인들이 화살과 활을 사용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고고학자들은 견해를 같이 하고 있다. G.child의 문명의 기원에 의하면 인류가 투창이나 활을 사용한 것은 구석기시대 말엽인 1~3 만 년 전 인 것이라 하지만 일부학자들은 10만 년 전부터 활을 사용했다고 추정한다.

근대 스포츠에서의 양궁 

양궁이 스포츠로서 행해진 시기를 정확히 파악하기는 매우 어렵다. 다만 스포츠로서 가장먼저 일찍부터 행한 나라는 영국이라 알려져 있다. 실제로 영국에 있어서 양궁은 다른 스포츠 보다 오랜 역사를 지니고 행해져 왔는데 아처리 대회가 바로 그것이다. 1538년 Menry Ⅶ 때 오락용 경기로서 스포츠 화하여 경기를 시작해 전 유럽으로 활발하게 퍼져나갔다. 근대 올림픽에서 최초의 경기는 1900년 파리올림픽에서 최초로 시행되었으며 이후 올림픽대회부터는 실시하지 못했으며, 그러다가 양궁이 올림픽에서 다시 시행된 것은 그로부터 72년 후인 1972년 뭰헨에서 개최된 20회 올림픽대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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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양궁연맹 결성(F.I.T.A) 

1920년 7회 벨기에 엔트워포 올림픽에서 시행된 이후 별 다른 진전을 보지 못하던 중 양궁 활성화 방안을 모색하다 1931년 폴란드 LWOW에서 유럽 몇개국이 참가하여 제 1회 세계 양궁선수권대회를 개최하면서 국제 양궁연맹이 결성되어 체계적인 대회 개최와 양궁규정 및 경기 방식이 시행되는 계기가 되었다.

장애인 양궁의 기원

1967년 대방동 용사촌(한국전쟁 부상자)척수 국가유공자들을 대상으로 양궁교습이 이루어 졌으며, 국가유공자들의 재활을 돕는 운동으로 대한민국상이군경회가 양궁 지도자를 대한궁도협회에 의뢰하여 제16회 세계 척수 장애인체육대회에 참가했는데 이 대회 참가는 우리나라 최초의 국제대회에 참가했다는데 의의가 있다. 현재 장애인 양궁 인구는 전국에 50여명 분포되어 있으며 84년 장애인올림픽, 88년 장애인올림픽 등 각종 국제대회에서 다른 나라들이 넘볼 수 없을 정도로 최고 기량을 발휘하고 있으며, 노쇠화 된 선수들을 위한 컴파운드부도 정식 설립되어, 기존의 리커브부 와 같이 각종 국제 대회에 참가하고 있다. 2004년 제12회 아테네 장애인올림픽에서는 남자 통합 단체전 금메달과 남?여 개인전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한국양궁의 세계무대 진출 

1972년 뭰헨 올림픽에서부터 양궁이 정식종목으로 채택되었으며 동년 27회 국제 양궁연맹에서 대한양궁협회로 등록이 되었다. 한국의 국제대회 처녀출전은 1978년 방콕아시아게임에서 김진호 선수가 북한의 김향인 선수를 누르고 첫 금메달을 수상하는 영예를 차지하고, 1979년 베를린 제30회 세계양궁선수권대회에 참가하여 여자 단체우승, 김진호 선수는 개인 우승을 차지하여 세계 양궁 강국인 미국을 비롯한 유럽에 한국 양궁의 우수성을 마음 것 과시하였다. 그후 올림픽 및 각종 국제대회에서 서향순, 김수녕 등 지금 까지 양궁 하면 한국이라는 세계 최강의 실력임을 유감 없이 발휘하고 있다.

1992년 제25회 바르셀로나(Barcelona) 올림픽대회에서는 여자 개인 1위와 여자 단체전 1위를 하였으며, 1995년 제38회 세계양궁 선수권대회에서 이경출이 남자 개인 우승을 차지하여 1993년 박경모에 이어 세계선수권 남자개인 2연패의 위업을 이뤘다. 2000년 제27회 시드니(Sydney) 올림픽경기대회에서는 윤미진?김남순?김수녕이 개인 금?은?동메달을 차지했으며, 단체전에서는 남녀 모두 우승을 기록하였다. 2003년 뉴욕 세계선수권양궁대회에서도 윤미진, 박성현, 이현정선수가 금. 은. 동메달을 차지하고 단체전도 남녀 동반 우승을 했다. 2004년 제28회 아테네 올림픽에서는 박성현, 이성진선수가 나란히 1,2위를 차지하며 단체전에서도 여자는 6연패를 남자는 2연패를 하여 4개의 금메달 중 3개를 차지하는 한국양궁의 저력을 보여 줬다.